
임신을 한지 벌써 13주차가 되었다.
아이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절실하게 임신을 바라지는 않았다.
회사와 커리어에 욕심이 상당히 있는 편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새벽에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이 뜬 것을 봤을 때는 기쁨보다는 자리에 누워 2시간동안 잠 못자고 뒤척였다.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걱정이 앞섰다.
처음엔 증상이 없어 괜찮았는데 본격적인 입덧과 토덧이 시작하니 정말 힘들었다.
토덧이 정말 심했던 날은 하루에 7번 이상 토를하며 괴로워했었는데 그날 처음 회사에서 '아 그냥 다 그만두고 싶다', '인사 고과 최하위를 받아도 좋으니 몸만 괜찮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신기할 정도였다.
내가 본 개발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1. 개발 자체에 욕심이 많아 끊임없이 성장하려는 사람
2. 안주하는 사람
나는 내 스스로가 1번에 속하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가정에 충실한,, 특히 아이가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2번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분들의 실력이 뒤쳐지는 것도 아니다. 훌륭한 분들이 많았다. 그냥 신기술에 대한 욕심이 적어 보인다고 해야될까.
그렇게 2번에 속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보며 왜 욕심이 없을까 하며 자만하고 못된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그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해된다는 것도 누가 보기엔 건방져보일 수도 있겠다)
임신을 하고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니 내 스스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된 듯하다.
개발 강의를 안듣는것은 당연하고 독서, 블로그 포스팅하는 것도 귀찮아져버렸으며 그냥 모든 것이 하기 싫어졌다.
쉬는 날엔 하루종일 누워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나도 내가 이 정도로 게으른 사람이었나 생각이 들곤 한다.
임신을 핑계로 나의 게으름이 활짝 꽃피운 느낌.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면.. 워킹맘들, 생계를 책임지는 워킹대디(?)들 모두 저마다 삶에서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관심사가 다를 뿐 대단한 분들이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어린 아이가 있는 직장인들에게 자기계발은 정말 힘들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이 모두 나태함에 대한 자기 합리화와 핑계로 보일 수도 있겠다.
나 자신도 그랬으니 뭐 크게 반박은 못하겠지만 몸이 이전같지 않으니 정말 힘들다고만 말하고 싶다.
왕복 4시간이라는 출근길을 버티며 매일같이 힘들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기에 내 앞으로의 커리어가, 인생이 어떻게 될 지 잘 모르겠다.
김영한 강사님과 같은 분들도 아이들을 키우시지만 여전히 훌륭한 개발자들의 멘토이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고사하고 정년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그래도 이 글을 읽는 모든 직장인들, 특히 아이가 있는 직장인들 모두 대단하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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